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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운명적 사랑을 믿는 '톰'은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 생각하는 '썸머'에게 푹 빠져버린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1년 전쯤, 한 신규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자의 심리상담 제의를 받았다. 연애 경험이 없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연애 시작을 진심으로 돕고 싶다는 제작진의 말에 촬영에 참여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명인도 아닌 모솔들의 연애 시도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까? 새마을금고 통장압류 안 그래도 점차 연애를 안 하는 시대인데.’
기우였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고, 나는 ‘TV 틀었다가 선생님이 나와 깜짝 놀랐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듣게 됐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연애를 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도, '사랑'은 여전히 큰 관심이 가는 주제인 것이다. ‘일과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프 외환은행월복리 로이트의 말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연애는 어렵다. 나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그랬고, 진료실에서 만나는 모든 분이 그렇다. 연애로 힘들었고 더 건강한 연애를 바라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으면 두꺼운 책으로도 부족할 텐데, 그 대신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재미 속에 심오한 연애 심리까지 숨어 있는, 그래서 세 번을 봤음에도 그때마다 차량유지비양식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500일의 썸머’를.

부정하고 경계해도 사랑은 시작된다



메시지카드 회사에서 일하는 톰은 사장의 새 비서로 입사한 썸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미소금융대출후기운명적인 연인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톰 앞에 이상형 썸머가 나타나며 영화는 시작된다. 즉각 사랑에 빠져 버린 톰과 달리 썸머는 사랑 자체를 부정하며 연인으로의 발전을 거부한다.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는 것은 불편해요. 누군가에게 구속되는 건 싫거든요.”
“그러다 사랑에 빠지면요? 어쩔 거죠?”
세테크 “정말 그런 걸 믿어요?”
“사랑은 산타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사랑이 뭐죠?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못 해봤는데. 열에 아홉은 이혼해요. 우리 부모님처럼.”
“우리 부모님도 이혼했지만…”
“고집부리는 게 아니에요. 사랑 같은 건 없어요. 환상이죠.”
안타깝게도 진료실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마음이다. 과거에 겪은 상실과 슬픔의 감정은 마음을 삐딱하게 만든다. 또 다른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이전 연인의, 어린 시절 부모의 외도 경험에 계속 발목 잡힌 이들도 많이 만난다. 사랑에 빠져 버릴까 극도로 경계한다. 연애가 시작되어도 마음을 열지 않기도, 결혼까지 했음에도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물려줄 수 없기에 2세는 가질 수 없다고도 한다. 과거가 반복된다는 법이 없음에도, 과거와 지금 모든 것이 달라졌음에도 사람의 마음은 이렇다. 열에 아홉이 이혼한단 말이 진실이 아님을 머리로 알더라도, 마음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톰과의 연애가 시작되는데, 사랑에 빠지는 비이성적 힘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제정신 아니었던 그 순간을 다들 경험해 보았으리라. 이렇게 힘겹게 시작된 연애인 만큼 행복하게만 흘러가면 좋겠지만, 모든 연애가 그렇듯 그들 역시 행복과 고통이 뒤섞인 시간을 보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공의 때 이 영화를 처음 접한 내 눈에는 썸머의 심한 감정기복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런데 10년 넘게 지나 다시 볼 땐 톰의 사랑에 눈길이 간다.매우 열정적이지만 결국 참사랑에는 이르지 못한, 자기중심적 사랑.

환상이 끝날 때 나타나는 참사랑의 갈림길



누군가의 여자이기를 거부하는 썸머는 톰과 친구도, 애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연애를 시작한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톰은 연애 내내 썸머에 대해 잘 모르고,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연애의 시작부터 그렇다. 썸머에 대해 실은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저 자신의 환상과 기대를 덮어씌운 채 혼자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연애 역시 다 그렇다. 모든 연애는 투사로 시작된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 사랑에 빠진다. 내가 바라던 사람이라 믿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사람을 알게 될수록 내가 투사하던 환상과 현실의 괴리가 보인다. 실망할 수밖에 없는 그때,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내 기대와 다른 부분을 인정하며 참사랑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아니면 네 사랑이 부족해 내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지 못한다며 상대방을 탓할 것인지.
안타깝게도 톰은 있는 그대로의 썸머를 바라볼 줄 몰랐다. 썸머가 알려줘도 듣지 않았다. 만난 지 109일째, 처음 집으로 톰을 초대한 썸머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의식이 잔뜩 담겨 있는 꿈 이야기도 해준다. 썸머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그 순간에도 톰은 자신만 바라본다.
‘톰은 깨닫는다. 이런 얘기는 아무나 들을 수 없다는 걸…(중략) 또 누구에게 말했는지 궁금해졌다.’
썸머의 마음에는 관심 없이 그저 자신이 특별한 남자가 된 것에 기뻐하고 집착하는, 이런 자기중심적 태도가 이후에도 계속된다. 왜소한 자신과 대비되는 근육질 남성이 썸머의 옆에 앉아 유혹할 때 한마디도 못 하고 쥐 죽은 듯 있다가 “저런 찌질이가 좋단 말이야?”라는 말에는 바로 펀치를 날린다. 연인이 곤경에 처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시받는 상황을 더 견딜 수 없기에.
겉으로는 마냥 행복하고 뜨거운 연애처럼 보이지만, 진짜 자신의 마음속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톰에게 지친 썸머가 이별을 말한다.
“우리 그만 만나자. 지금 우리가 뭐 하고 있는 걸까?”
“그런 건 상관없어. 난 행복해. 넌 아냐?”



썸머와의 이별 이후 톰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진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300일 가까이 만났지만 이별의 순간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던 톰은 그 이후 완전히 무너진다.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도 다 알아보고 걱정할 정도로 일상이 무너진다. 누구나 이별 후에는 힘들다만, 이런 붕괴는 그저 사랑의 크기가 컸던 것 때문만은 아니다.프로이트는 ‘대상애적 사랑’과 ‘자기애적 사랑’으로 사랑을 구분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한 전자의 경우 사랑의 초점이 타자에게 맞춰져 있다. 상대의 성격, 강점과 약점, 내 환상과는 다른 현실적인 모습까지 받아들이며 관계를 맺었다. 그렇기에 연애가 끝나면 상대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은 있어도,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크게 흔들릴 일은 없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자연스레 애도의 과정을 거치며 회복된다.
하지만 자기애적 사랑의 경우 사랑의 초점이 상대방에게 비친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 상대방은 거울 역할일 뿐, 실제 사랑하던 것은 그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매력적인 썸머를 소유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었기에, 이 관계가 깨질 때 단순히 썸머만 잃은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다’라는 자아상까지 함께 붕괴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애적 사랑을 한 사람들에게는 이별이 그저 단순한 이별이 아니다. 자기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기에 더 큰 고통을 더 오래 겪는다. 그들의 슬픔은 자신을 향한 애도이기에 더 극적이고, 스스로도 그 슬픔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기에 슬픔을 더 흘려보내지 못한다.

연애의 사계절을 거치며 우리는 성장한다
이별 후 고통에 빠져 있을 땐 다들 비슷한 마음이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사랑을 못 할 것 같아 영원히 고통스러울 것 같다. 마치 지금의 날씨처럼. 9월이 되어도 여전히 더운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반드시 가을은 오고, 그렇게 썸머(여름)를 잃고 공허함에 빠져 있던 톰의 앞에도 자연스레 '어텀(가을)'이 나타난다. 계절을 딴 그들의 이름처럼 사랑과 연애에도 사계절이 있다. 시간 속에 변함이 그저 당연하다. 봄과 같이 두근거리는 연애의 시작이 있고, 영원할 것 같던 여름도 결국엔 지나간다. 그토록 기다리는 가을은 너무 짧다. 그리고 결국 추운 겨울이 끝에 온다.



결별한 뒤 시간이 흐르고 공원에서 우연히 재회한 톰과 썸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차피 결국 헤어질 텐데 말이죠”라며 연애를 회피하는 목소리를 점점 더 자주 듣는다. 모든 것을 효율성 위주로 추구하는 시대 속에 연애는 점차 뒤로 밀린다. 시간도 돈도 많이 쓰이는데 결국 높은 확률로 상처받을 연애 대신 자기계발이나 취미 생활,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 등이 합리적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이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며 연애 중인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줄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무엇도 연애만큼 우리를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나는 내담자들로부터 연애의 시작을 전해 들을 때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한다. 물론 문제적 연애를 반복하는 경우에는 한탄이 섞여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연애를 통해 자아가 성장한다. 뜨거운 열애의 순간을 통해서도, 아픈 이별의 순간을 통해서도. 연애의 사계절에는 모두 다 제각각 의미가 있다. 썸머와의 500일간 지질했던 톰은 그 500일이 있었기에, 특히나 추운 겨울이 있었기에 성장하게 된다. 이게 인생의 역설이고 연애의 모순이다.
정신과 의사 스콧 펙은 ‘사랑이라는 모험을 해야 사랑을 할 수 있다’ 말했다. 그 모험엔 상처와 상실의 가능성도 있기에 망설여질 수 있지만, 이 영화와 이 글이 그 망설임을 약간이라도 녹이게 되길 바란다. 더 많은 이가 사랑과 연애를 통해 성장하게 되면 좋겠다. 안전하게 타인의 연애를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어들게 된다면 좋겠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